[최석원 칼럼] 日금리인상에도 '엔화 강세'가 쉽지 않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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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원 칼럼] 日금리인상에도 '엔화 강세'가 쉽지 않은 이유
  • 최석원 이코노미스트·SK증권 경영고문
  • 승인 2024.03.26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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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원 이코노미스트·SK증권 경영고문] 지난 3월 17~18일간 진행된 통화정책회의에서 일본은행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며 마이너스 금리(네거티브 금리: negative interest rate) 정책에서 벗어났다. 2016년 이후 거의 8년만의 일이고, 2006년 이후 인상 결정은 처음이니 17년만의 일이다.

이와 함께 아베노믹스의 일환으로 추진됐던 양적완화 패키지, 즉 장기금리를 0% 내외에 묶어 둔 수익률곡선 컨트롤 정책과 증시 안정을 위해 진행되던 중앙은행의 ETF 매수 정책도 중단했다.

표면적으로는 90년대 초반 부동산 및 증시 거품 붕괴 이후 잃어버린 30년을 뒤로 하고 일본 경제가 정상화 과정에 진입할 것이라는 기대가 생길 법한 상황이다.

활력이 넘치는 일본 경제

실제로 이번 통화정책 결정이 내려지기 이전의 일본 경제를 보면, 과거 수십년간 보여 주지 못했던 활력을 보여주고 있다. 2023년 실질 경제성장률은 1.9%로 25년 만에 우리나라를 넘어섰고, 소비자물가상승률 역시.3.1%로  2차 오일쇼크로 3.1%를 기록한 1982년 이후 41년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을 기록했다. 그런가 하면 임금상승률도 작년의 3%대에서 올해 5%대로 올라섰다. 수치로만 보면 디플레이션이 아니라 인플레이션을 걱정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평가가 나올 법하다.

글로벌 경제 블록화 과정에서 누적된 일본의 경쟁력이 힘을 발휘하고 있는 점 역시 긍정적이다. 필자는 몇 주전 기고에서 일본의 GDP대비 부동산 가격이나 임금 수준, 그리고 노동력의 질과 기업 활동에 필요한 인프라 등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경쟁국에 비해 높다는 평가를 내린 바 있는데, 이러한 점은 블록화 과정에서 진행되고 있는 밸류 체인의 변화에서 일본의 입지가 높은 상황임을 의미한다. 실제로 일본의 비주거용 투자는 2022년과 23년 모두 2% 내외의 증가율을 보이고 있는데, 작년 설비투자증가율이 0.5% 수준이었던 우리나라와 비교되는 수치다.

여기에 통화당국 입장에서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는 자산시장 역시 활황을 보이고 있다. 증시는 니케이225 지수 기준 사상 최고치를 넘어서 4만포인트를 웃도는 상황이고, 작년과 올해 현재까지 증시 상승률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부동산 시장 역시 상승 중인데,  일본의 주거용 부동산가격은 2023년 3% 내외 오른 것으로 파악되고 있고, 도쿄를 비롯한 수도권은 이보다 더 큰 폭의 상승률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네거티브 금리 정책과 채권·주식 매수를 통한 대규모 양적 완화를 지속한다는 것은 어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당연한 귀결로 시장에서 미국과 일본에서 나타날 통화정책 정상화가 결국 엔화의 강세를 촉발할 것이라는 예상이 늘어나는 것은 자연스럽다. 국내 5대 시중은행의 엔화저축 규모가 1.2조엔 내외로 늘어난 것도 이러한 예상을 반영한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경제와 자산시장 흐름, 그리고 시장참가자들의 예상에도 불구하고 일본은행의 정책 변화는 매우 신중할 것으로 예상된다. 투자자들이 예상하고 있는 엔화 강세가 생각보다 늦은 시점에 느리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실제로 이번 정책 변경에서도 기준금리의 정상화는 대출 증가에 기여하지 못한 벌칙성 정책의 정상화 정도에 그쳐 일본은행이 매우 신중하게 접근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금리 인상과 양적완화 패키지의 중단 이후에도 엔화가 크게 움직이지 않은 것은 결국 투자자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속도라는 측면으로 이해 가능하다. 

앞으로도 엔화 가치 강세가 늦은 시점에, 느리게 진행될 것으로 보는 것은 전격적인 긴축에 나서기 어려운 일본 경제의 구조적 문제와 지금까지 보여줬던 일본은행의 행태 때문이다.

특히 가장 큰 문제는 일본이 과연 디플레이션 압력에서 벗어났는가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최근 2년간 높은 물가상승률을 기록했고, 올해도 과거 디플레이션 시기 대비 높은 물가상승률이 예상되긴 하지만, 대부분 외부로부터의 충격과 엔화 약세에 따른 것으로 건전한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만한 일본의 소비는 여전히 불안정적이다. 임금이 늘어난다고 해도 초저금리 하에서 조차 저축률이 높았던 일본의 가계를 감안할 때 긴축이 소비에 미칠 영향을 가늠하기 어렵다.

결국 디플레이션은 심리의 문제인데, 이러한 심리 측면에서 변화가 나타나고 확인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게다가 심리 문제와 관련해서는 일본은행도 자유롭지 않다.

일본은행이 17년만에 금리인상을 단행했지만 엔화가 당장에 강세로 돌아설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사진=연합뉴스

'엔화 강세' 기반한 환투자에 신중해야

다른 나라들에 비해 압도적으로 큰 정부부채 비율도 긴축에 부담이다. 정부의 이자 부담 때문이다. 물론 엔화 표시 국채의 반 이상을 일본은행이 보유하고 있다는 특징은 금리 인상에 따른 부담을 완화해줄 여지가 있다. 하지만, 국채 이자 부담의 증가는 결국 정부 입장에서 재정 정책에 제약을 가할 수 밖에 없다. 일본은행의 늘어난 국채 이자 수입이 보유 국채의 상환으로 이어져 정부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인지도 불확실하다. 설사 그렇다 해도 시간이 필요한 일이다.

고령화 문제도 풀기 어려운 숙제다. 합계출산율은 우리나라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 중이지만, 일본은 2030에 65세 인구 비율이 30%를 넘어서는 상황이다. 생산가능인구의 감소와 연금 체계의 문제가 경제 전체를 뒤흔들 가능성이 점차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고령층 1인을 부양하기 위한 생산가능연령층의 수가 높아지면, 결국 소비와 저축 모두 줄어든다. 이를 생산성 향상으로 방어하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다른 경제 주체와 마찬가지로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있고, 특유의 경제 구조적 문제를 잘 인식하고 있는 일본은행은 앞으로도 매우 신중한 통화정책 변경을 이어나갈 가능성이 크고, 이는 약해진 엔화 가치가 상당 기간 유지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통화정책 방향성에 있어서 차이를 감안할 때 결국 엔화는 지금보다 강해질 가능성이 있지만, 미국 등 주요 선진국의 통화정책 변경과 일본 통화정책 변경의 시계가 다르다면, 일본 증시 투자와 달리 엔화 강세 전망을 바탕으로 한 환 투자에는 시점에서나 속도에서나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 연세대 경제학과 학부와 대학원을 마쳤다. 대우증권 삼성증권 한화증권 등에서 채권분석, 경제분석 파트장을 역임했으며 과거 수차례에 걸쳐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선정됐다. 한화증권에서 리서치센터장을 거친 후 메리츠화재에서 직접 자산운용을 맡기도 했다. 이후 SK증권에서 리서치센터장, 지식서비스 부문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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